아줌마들이 스마트아줌마가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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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이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함으로써 아줌마들은 똑똑한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하게 된 이유는 물론 기술의 발달이 한 몫을 했고 거기에 더불어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아줌마들이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뉴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에 관련된 연구는 대부분 ‘젊은층’을 타겟으로 , 아니면 ‘노년층’에 초점을 두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줌마’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줌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 아줌마들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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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율은 세계 평균의 값보다 월등히 높다. 그리고 2015년 Digieco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스마트폰 보급율이 83%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4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Yonhap News 2015). 즉 한국은 스마트폰 천국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한국에서 스마트폰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 는 뜻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결코 우리에게 편리함만 가져다 주지 않는다. 편리함이라는 장점을 줌과 동시에 불편함이라는 단점도 함께 주는, 인터넷과 같이 양날의 검이 바로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집에 가스검침을 해주시는 분이 왔었는데, 앞으로는 도시가스 앱을 다운받아서 거주자가 직접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입력하는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검침원 분들이 가가호호 방문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는 ‘장점’이 생기겠지만 동시에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 혹은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분들은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해야한다거나 아니면 앱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 사실 요 몇년 동안 가끔 한국에 들어올때마다 놀라는 점은, 대부분의 시스템이 매우 ‘스마트 (스마트폰을 이용해야하는)’하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야하는 시스템을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용하고 있어서 스마트폰이 없거나 앱의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노스마트 (non smart)’한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트에가서 디스카운트를 받을때도 앱을 설치해야하고, 내가 좋아하던 커피빈의 핑크카드도 무조건 앱으로만 써야했고, 보험사에 필요한 서류를 보낼때도 카톡 친구를 맺은 뒤에 사진을 찍어 블라블라 보내라는 등의 ‘스마트폰 없이는 안되는’ 일상생활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의 스마트폰 이용은 간편하고 즉각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위에서도 계속 언급했듯이 그렇지 못한, 즉 스마트폰이 없거나 그것의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디지털 소외’를 느끼게 하는 ‘디지털 소외층’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볼께요)

아무튼,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좀 더 편리하고 간편한 모바일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 디지털 기기이다. 또한 단순한 ‘소통’ (전화통화등의 보이스 커뮤니케이션) 뿐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의 지인들이나 가족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나’ 소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우 고마운 커뮤니케이션 기기이다. 하지만 과연 아줌마들도 스마트폰 사용을 많이 하고 있을까?

우리 엄마, 엄마의 친구분들, 동네분들, 길에서 만나게 되는 아줌마들을 보면 확실히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3-4년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쓰는 아줌마들 반, 그리고 일반 피쳐폰을 쓰는 아줌마들 반 으로 생각되어졌었다. 우리 엄마와 친구분들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 짧은 3-4년 만에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급격히 증가한 느낌이었다. 주위 분들만 봐도 그렇고…

그렇다면, 과연 정말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증가했을까?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그래서 찾아본 결과,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데이터는 아직 없었고, (2015년 당시) 대신에 인터넷 사용에 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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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자료’들이 나오면 너무 지루한 느낌이 든다. (논문이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논문같이 쓰면 어쩝니까?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 아줌마들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것이다’ 라고 단순히 내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으로 말 할 수는 없는 노릇! 따라서 내 의견을 뒷받침 해주는 자료가 필요했고 (물론 이들은 모두 내 논문에서 사용한 자료들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렇게 ‘사실자료’를 첨부하는 것이다.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자료는 없지만, 위의 자료를 통해  아줌마들의 인터넷 사용이 급격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사용이 늘었다는 자료를 통해 아줌마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집단주의 (우리)

I997-1998년에 금융위기를 겪었던 한국은 사실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이  ‘나라를 살리기 위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노력에 의해 IMF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국인 이니까, 한국을 위해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집단주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집단주의, 즉 ‘우리’ 혹은 ‘집단’은 사회적 관계,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을 바탕으로 대부분 이루어졌다. 사실 한국의 집단주의와 같이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블로그는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논문’이 아닌 ‘아줌마와 그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리서치’와 연관된 것들을 쉽게 풀이하여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내용의 것은 이곳에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집단주의에 관한 자세한 점은 따로 구글링을 해서 찾아보시는 것을 권유합니다.

한국의 집단주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의 아줌마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단순히 한국에 사는 중년의 여성 집단 이 아닌, 한국에만 존재하는 매우 한국스러운,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를 나타내주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한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때의 붉은악마는 한국의 집단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집단주의에 대한 이 포스팅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한국의 집단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와 ‘정’에 관한 설명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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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의 아줌마들이 아줌마 집단 끼리의  ‘비슷한 패션’=’아줌마 패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계속 풀어 나가겠다.
이미지 출처 <http://kfoodtalker.tistory.com/3442>

물론, 한국의 집단주의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내 경험으로 봤을때 한국의 집단주의는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획일화를 통해 그 개인이 집단에 잘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속된 말로 튀지 말아라! 가 우리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었고 따라서 초등학교나 대학 그리고 사회에서도 ‘튀는사람’보다는 집단과 잘 어울리는 즉 ‘조금 덜 튀는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다른’사람 보다는 ‘비슷한’사람을 선호하는게 한국사회이고 따라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그 속에 속하는것을 좋아하는게 한국사회 인것 같다. (일반화는 아니고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되어 지는 바를 적은 것이다) 패션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 아이템이 유행하게 되면 백화점이나 다른 상점에 가면 그 인기있는 아이템은 늘 품절이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옷을 입고 있다. 예를 들어 몇년전에 사회적 문제도 되었었던 고가의 노스페이스의 패딩을 입은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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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사진은 권력이다’ 블로그  <http://photohistory.tistory.com/11401>

그리고 사회적 문제는 아니고 아줌마들의 패션을 나타내주는 ‘등산복패션’!! 어딜 가나 등산복 입은 아줌마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또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등산복은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라서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같은 패션을 하고 있는 아줌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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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집단주의는 ‘나’보다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이러한 한국 집단주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집단주의가 가진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한국의 집단주의의 긍정적인 면, 예를 들어 한국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붉은 악마, 떼창문화 그리고 아줌마 문화)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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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Koreatimes.co.kr <http://www.koreatimes.co.kr/www/news/biz/2014/01/291_67541.html>

떼창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우리’라는 컨셉을 통해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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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We’는 물론 ‘I’의 복수형태이다. 따라서 ‘I’가 여러개 모이면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우리의 ‘우리’라는 개념은 단순히 ‘나’의 복수형태가 아닌 ‘나’와 ‘정’의 결합으로 생긴것이 우리의 개념이다. 즉 정이 없으면 우리가 될 수 없는 한국특유의 개념인 것이다. (사실 ‘우리’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 할때 굉장히 어려웠었다. 서양인들에겐 생소한 ‘정’이라는 개념과 ‘we’와 ‘우리’가 같은 개념이 아님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었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는 매우 독특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Korean collectivism (we-ness)

The gold collection  campaign were possible because of Korean collectivism which is We-ness, Uri (or Woori). Uri,  we-ness, or in group-ness as a more essentially relevant feature of Korean collectivism. The social relationship among Korean in-groups are based on social networks, the sophisticated genealogical system, the power of school connections, or regionalism. For Koreans, group is very important. To explain or talk about Korean collectivism in one blog post is not enough but this blog is not a ‘thesis’ rather a blog that I would like to share my research project, especially about ‘ajummas and their usage of smartphones in everyday practices’. In addition, I need to mention about Korean collectivism to support some ideas (e.g. gold collection campaign). Moreover, it might be helpful to you to understand Korea and ‘ajummas’ in Korean society if you know what Korean collectivism (we-ness) and Jeong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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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mage explains how ajummas have similar hair styles in Korea. More stories about ajummas will be posting continuously.

image from <http://kfoodtalker.tistory.com/3442>

 

Of course, there are negative opinions how Korean collectivism ignores everyone’s individuality and force to be standardised. For me, Korean collectivism can be pros and cons in many ways. It leads people to be united and do something together such as Red Devils (supporting group for the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Group Singing or Gold collection campaign. This Korean collectivism brought people to feel like ‘We are Koreans’ or ‘We are  one’. And in my experience, this Korean collectivism doesn’t allow me to be different from others. In other words, being different from others is not an ideal thing to be in certain groups. Thus I have to become similar with others in groups to stay in certain groups. This is just my opinions so there should be various ideas about Korean colle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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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Koreatimes.co.kr <http://www.koreatimes.co.kr/www/news/biz/2014/01/291_67541.html>

 


Group Si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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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chool students wear the same North Face jumpers at graduation ceremony

image from: photohistory.tistory.com  <http://photohistory.tistory.com/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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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s wear similar mountain-climbing clothes in the subway

 

This Korean collectivism can be explained with the concept of ‘Woori (we-ness)’.

Woori (w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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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is a plural of ‘I’ in linguistic. So a group of ‘I’ can be interpreted as ‘Woori’ (because Woori means ‘we-ness’ in English).

However, Woori is not simply a plural of ‘I’. As you can see above, woori is not a simply a plural of ‘I’, and it needs ‘jeong’ between ‘I’ to become woori.

Then, what is Jeong?

 

Gold Collection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brought serious economic pain to every Korean family but people in Korea became one to overcome this economic crisis together at the same time.

Ten tons of gold was collected by people only in 2 days

video from KBS News in 6th January 1998 <https://www.youtube.com/watch?v=P5puNUKcL3s>

Gold collection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examples of campaigns during the IMF, from 1997 to 1998. The gold collection campaign was diffused to the whole nation regardless of age and gender. In particular, many housewives gave up their wedding rings and their children’s first-birthday rings to support the nation’s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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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Korea brought and donated their gold to the government with no string attached during 1997 to 1998. The only reason to donate their gold was for saving their country and “becoming a powerful nation”. This movement can be explained with Korean collectivism.

Have a good weekend all ajummas! 모든 아줌마분들! 좋은 주말 보내세요!

Have a good weekend all ajummas!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아줌마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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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Locksmith’ in Seoul

‘아줌마 열쇠’ 서울의 한 열쇠가게 이름

Women in Korea (3) IMF 1997

We had IMF in 1997.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this economic crisis leads to the “reversal of traditional gender roles and endangered the stability of the patriarchal nuclear family system” (Kim 2008, p.392). Due to the worsening of economic conditions, women had to come out of the houses to work rather than being good mothers and wives at home. They had to be good mothers and wives at home and at the same time, these women had to work outside of home to earn money. In other words, women in Korea during IMF, they became breadwinners as well. However, most ajumma were part time  lower-paid workers such as cashers at supermar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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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the movie ‘Cart (2014)’,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03011094055036>

Even though they were part time workers who got low pay, they worked really hard because they believed that the improvement of each family’s economic condition can be a cornerstone of Korea’s economic growth. People in Korea during IMF, they tried to overcome the IMF together. However, still it blew to every family’s economy. In May 1998, more than 80% of households in Korea suffered very much in the reduction of income. Fathers lost their jobs so they could not fulfil the role of fathers and husbands in their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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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Monthly Chosun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101100071>

In 1998, there were 42% increase of suicide rate compared to the previous year. Male had higher percentage than female in the report. It could be assume that fathers couldn’t able to do their duties to their families because of unemployments and crippling debts. Therefore, mass media encourages people to recognise the importance of their fathers in the family. For example, “save the head of the family”, “encourage men” and “support and cheer up our fathers”. Besides, people do various campaigns for the nation and gold collection was one of them. I will post about ‘gold collection’ campaign soon.

 

 

TV Commercial in 1997 by KIA motors “We can do it!”

Reference: (1) Kim, S 2008, ‘Feminist Discourse and the Hegemonic Role of Mass Media’, Feminist Media Studies, vol. 8, no. 4, pp. 391-406.

 

한국의 여성 (2)-1 1980년대 치맛바람

치맛바람! 요즘에는 많이 쓰진 않지만 1980년대에는 많이 쓰였던 말이다.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와 사설 학원등을 다니며 관여하는 것을 빗대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다닌다’ 라고 그 당시 극성 엄마들의 행태를 비꼬아서 부르던 말이다. 지금도 한국엄마들의 교육열은 대단하지만 1960년대 이후 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엄청났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과외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사교육은 단순히 ‘교육열’을 넘어선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강남 8학군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 변경, 이사 등은 말 할 것도 없었고, 이로 인해 강남 8학군의 학교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지금이야 없어진 모습이지만 그 당시의 엄마들은 소위 말하는 ‘SKY (Seoul대학교, Korea 고려 대학교, Yonsei 연세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강남 8학군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기억을 잘 하진 못하지만 내 큰 어머니도 강남의 8학군으로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어린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 ‘극성엄마’ 였었다. 물론 강남 8학군 효과는 그리 크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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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비밀 고액 과외를 하던 개인교사들이 경찰소로 연행되는 모습
이미지 출처는 경향신문, <http://news.zum.com/articles/25543690>

그 당시의 엄마들은 (아줌마들) 좋은 대학이 편안하고 성공한 인생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좋은 대학’ 은 ‘성공한 인생’ 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전하긴 하다. 물론 일부. 따라서 ‘좋은 스펙’을 따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그게 불법 고액 과외라고 할지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는게 엄마로서의 도리였고 역할이자 꿈 이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갈 때는 불법 과외같은 건 없었지만 (암암리에 있었을지도) 쪽집게 과외라고 불리우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쪽집게처럼 뽑아서 알려준다는 과외, 것을 주위 몇몇 친구들이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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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대학입학 시험장 풍경.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들은 자녀의 시험이 치뤄지는 동안 내내 저렇게 교문앞에 서서 기도를 했다. 힘든것도 추운것도 모른 채, 그렇게 계속 기도를 했다.
이미지 출처는 Samsung & You Premium, <https://www.samsungnyou.com/7486/>

이러한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여전하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치원때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작되고, 그 방식은 예전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스마트’해지고 있다. (스마트 해졌다는 것은 지금의 엄마들은 스마트기기들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습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역시 과도한 교육열을 가진 ‘헬리콥터 맘’ 이나 ‘캥거루 맘’ 들은 자녀들의 삶에 너무 깊게 관여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힌트’를 주는게 아니라, 바로 ‘정답’을 알려주다 보니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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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맘, 이미지 출처는 <http://www.opnews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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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맘, 이미지 출처는 <http://news.donga.com/3/all/20061121/8375428/1>

1980년대 이래로, 한국의 여성들은 “프로 엄마” 그리고 “프로 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이전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엄마, 아줌마들은 ‘수퍼우먼’이다. 모든것을 다 해내는 수퍼우먼.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국의 여성, 특히 아줌마들이 단순히 ‘프로 엄마’ 혹은 ‘프로 주부’의 역할을 하는 수퍼우먼이 아닌, 아줌마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여성은 엄마 혹은 주부 (아내)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스마트해진 치맛바람, 디지털 치맛바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것이다.

(2) 1980년대~1990년대(IMF 이전의 한국여성)

한국여성에 관해 시간순서대로 짧게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두 번째 포스팅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여성 들은 전쟁 직후의 나라와 가족을 위해 어린 여학생들 까지도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고 한국경제를 살려내는데에 주축이 되었었다. 그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중년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현저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에 큰 힘을 보태었다. 특히 제조 부분의 수출이 급성장 하게 되었고 한국의 경제는 안정을 찾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도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결혼 후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되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당시의 기혼 여성들은 결혼 후에 퇴사를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고, 따라서 본인의 의지에 따라 혹은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상당수의 기혼 여성들은 (모두가 아닌) ‘현모양처’를 꿈꾸며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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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기혼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밖에서 일을하며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즉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가족의 모습은  ‘남성’은 가장이 되고 ‘여성’은 현모양처가 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여성은 집안에서 ‘힘든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해야 했고, 남성은 집밖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했다.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침일찍 출근해서 야근은 기본으로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집에오고 또 주말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아버지’들을 통해서 왜 한국남성이 전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집단으로 조사가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집안일과 육아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고, 한국의 가정은 아버지가 빠지고 어머니가 주도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바뀌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자녀들과 어머니는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을 볼 기회가 매우 적었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은 여성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었다. 가정의 일이라는게 단순히 육아와 집안일만 있는것이 아니기에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즉 기혼 여성들은 점점 강해져 갈 수 밖에 없었고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점점 더 의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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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tvn http://program.interest.me/tvn/reply1988)

집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엄마와 아빠’의 두 역할을 해야했고, (물론 아버지 또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시간이 부족했었다. 이는 아버지의 탓이 아니다) 특히 어머니들은 자녀의 교육에 힘을 쏟았다. 소위 ‘극성 엄마’가 된 그 시대의 (여전히 지금도)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자녀교육에 힘을 쏟았는 지는 다양한 시각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 내가 리서치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당시의 어머니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남편의 부재에 따라 (회사일로 인해서 바빴던 그 당시의 아버지들) 가정과 육아는 오롯이 ‘엄마’의 것이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더 강했었던 것 같다. 더불어 그 당시의 어머니들은 결혼과 동시에 ‘현모양처’가 되어야 함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능력개발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가정주부’가 되어야 했으며, 따라서 그들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은 ‘자녀의 교육’이 되었던것 같다. 이러한 엄마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극성엄마를 만들어냈고, 극성엄마는 ‘치맛바람’을 일으키게 되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치맛바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여성 (1)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역사는 이 블로그에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한국의 여성학은 유럽과 같은 서양보다는 늦게 시작되었지만,  “한국의 여성학은 서양에서 수입해온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쌓아올린 매우 주체적 학문” 이다 (장필화 2014). 한국 여성의 역사에 대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다 풀어내지는 못하겠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한국 여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역사적 사건들과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늘 큰 힘이 되어준 한국경제 성장의 주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주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또한,이 블로그는 논문이 아니기에, 논문에서 다뤘던 내용보다는 좀 더 가벼운 내용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 여성에 대해서 시간순서대로 나열해 보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첫 번째로 ‘197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여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1)197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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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의 한국 여성들은 나라의 경제성장에 일조를 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부터 1970년대 까지 수많은 어린 여학생들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 결과 한국은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산품은 (농산물도 예외는 아니지만) made in China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made in Korea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큰 어머니의 가족분들이 미국에 사셨는데 그 때 대부분의 물건들이 made in Korea였다고 지금도 말씀하시곤 한다. 수출을 하던 물품들은 주로 봉제인형, 가발, 양말, 스웨터 등의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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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수출품 1960년대~1970년대 (서울역사 박물관에서 촬영한 것)

어린 여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대신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여학생들은 공장에서 그렇게 먹고 자며 일을 했다. 이 어렸던 여학생들이 지금은 아줌마가 되어, 우리 엄마의 나이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 분들의 고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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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2번째 이야기,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전의 한국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아줌마 vs 누나

2015년이 지나가고 2016년이 되었다. 2015년 12월부터 시작한 이 블로그는 아줌마에 대한 내 PhD연구의 일환으로 논문으로 쓰여진 내용보다는 보다 우리 일상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줌마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기록하고, 그러한 내 글을 읽는 (특히) 아줌마들 그리고 아줌마가 아닌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우리가 그저 지나쳤던 아줌마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블로그에 와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듬뿍 받으시길 바라고 많이 와서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함께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읽기 편하도록 존대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남대문 시장에 다녀왔다. 남대문 시장은 어렸을때부터 엄마손을 잡고 쫓아가던 곳이었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가게들, 특히 지금은 마트나 집앞 나들가게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명 ‘수입과자’를 팔던 남대문의 도깨비 시장은 어린시절 나에게 신세계였다. 다행히도 집앞에서 버스 한번만 타면 남대문시장 까지 갈 수 있고, 또 남대문 시장에 가서 구경을 한 뒤에 지하도의 가게들과 명동을 가로질러 구경하는 재미는 꽤 크기 때문에 나는 남대문 시장에 가는걸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도 갔다.

신세계 지하를 지나서 남대문의 여성복 (특히 중년여성을 위한 옷가게가 빼곡하게 들어서있는)을 파는 00프라자에 갔다. 사실 이 곳은 평일오전에 가면 발 디딜 틈 없이 아줌마들로 가득찬 곳이다. 내 또래의 (30대)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남성분들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00프라자의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모두 같은 스타일의 머리를 한 비슷한 키와 체형을 가진 아줌마들이 옴닥옴닥 붙어서 이 옷 저 옷을 서로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의 느낌을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마치 대한민국의 50대 이상의 아줌마들만 모아 놓은 듯 하다. 그리고 수많은 아줌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아줌마들은 모두 어디서 오셨을까? 아줌마들만 사는 별이라도 존재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정말 너무 매우 퍽 비슷한 ‘아줌마’들로 꽉 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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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좀 늦게 도착한 탓에 바글바글한 아줌마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참고로 그곳은 오후 1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할 수 없이 그곳의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팥죽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 점심 때가 좀 지난시간이라 배도 채울 겸 그 가게에 가서 팥죽 하나를 시켰다. 마땅히 앉을 테이블이나 의자는 없는 가게지만 팥죽을 사가지고 먹을 수 있는 은행옆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 매우 자연스럽게. 팥죽을 막 뜨려는 순간 아주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젊은 남성이 그 곳에서 팥죽을 먹으러 모여든 아줌마들을 상대로 화장품을 팔고 있었다. 50대는 훌쩍 넘은 60대의 아줌마들에게 그 젊은 남성은,

“누나! 누나는 얼굴은 이쁜 얼굴이야! 근데 왜 안가꿔!! (화장품을 들어보이며) 이거 에센스랑 영양크림인데 한번 발라봐! 10년은 더 젊어지겠네 누나!!”

팥죽을 먹으며 그 젊은 남성에게 집중하는 아줌마들은 소녀처럼 깔깔 거렸고 그 중 한명이 그 화장품을 구입했다. 화장품을 구입한 아줌마는 그 젊은 남성에게 기념으로 셀카를 찍자고 했고 그 아줌마는 친구들에게 자랑할거라며 연신 웃어댔다. (사실 그 젊은 남성은 유명하진 않지만 티비에 종종 볼 수 있는 코미디언 이었다. ) 화장품을 판 그 젊은남자는 “누나들 다음에 또 봐요!” 하며 사라졌고 팥죽을 먹던 아줌마들은 다시 팥죽을 먹으며 그 코미디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옆에 앉아서 조용히 구경하던 나도 다시 팥죽을 먹으며 킥킥 거렸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이 상황이?

아줌마들의 아지트라고 볼 수 있는 그 00프라자 옆의 팥죽가게 옆 난간에 옹기종기 모인 아줌마들과, 그 앞에서 ‘어머니’뻘의 아줌마들에게 ‘누나’라고 부르며 화장품을 파는 젊은 남성. 그리고 같이 웃고 떠들며 화장품도 발라보고 구입도 하고 또 같이 셀카도 찍으며 즐거워한 우리 아줌마들!

그래, 아줌마도 여자다. ‘아줌마! 이거 발라봐!’ 라고 했다면 과연 그 화장품이 잘 팔렸을까? ‘누나!’ 라는 말에 아줌마도 기분좋아진 것이다. 아들뻘인 그 젊은 남성이 불러주는 ‘누나!’ 라는 말이 아줌마들을 기분좋게 만들어 화장품을 팔려고 하는 속셈, 즉 마케팅 전략임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나’라는 말과 친근하고 상냥하게 화장품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고 수다도 떨어준 그 젊은 남성의 화장품을 사고 또 다함께 웃고 떠들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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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 가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활기찬 시장모습에 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어서 자주 가게 된다. 가끔은 눈살이 찌뿌려질때도 있고 때로는 집에와서도 생각이 날 정도로 즐겁게 해주는 다양한 아줌마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누나 라고 불려지면 좋아하는 아줌마들. 왜 아줌마라는 말은 여성들이 불려지길 원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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