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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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swish of skirt

In the previous post, I talked about ‘Women in Korea (2)-1: swish of skirt in 1980s’. This education fever still remains in Korean society but mothers (ajummas) today followed different ways that I called ‘digital swish of skirt’. Compared with non-smartphone era which is from 1980s to early 2000, the use of smartphones change our life styles in many ways likewise the enthusiasm of education among ajummas. This means that ajummas could be able to get involved in supporting their children’s education easily through using their smartphones. There are various apps that helps mothers (ajummas) to share useful information about their children’s education for example, “Which Hak-won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 do you go?“. This app provides people’s various opinions and useful information about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s for parents and their children. So it helps both parents and their children to choose better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s. This app determines the ranking of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s according to the actual statistical data. Parents can ask questions or answer others’ questions interactively through using app on their smartphones in re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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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many types of apps for parents who concern their children’s education in Korea. I cannot enumerate every app in this blog but one thing that I can say is these types of apps for parents are increasing significantly. The term ‘swish of skirt’ is not used broadly today but I can see the swish of skirt phenomena still remains today. I call it ‘Digital swish of skirt’. Ajummas (mothers) are overly involved in their children’s education today through using education related apps on their smartphones. They becomes smart ajummas.

한국의 여성 (2)-1 1980년대 치맛바람

치맛바람! 요즘에는 많이 쓰진 않지만 1980년대에는 많이 쓰였던 말이다.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와 사설 학원등을 다니며 관여하는 것을 빗대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다닌다’ 라고 그 당시 극성 엄마들의 행태를 비꼬아서 부르던 말이다. 지금도 한국엄마들의 교육열은 대단하지만 1960년대 이후 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엄청났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과외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사교육은 단순히 ‘교육열’을 넘어선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강남 8학군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 변경, 이사 등은 말 할 것도 없었고, 이로 인해 강남 8학군의 학교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지금이야 없어진 모습이지만 그 당시의 엄마들은 소위 말하는 ‘SKY (Seoul대학교, Korea 고려 대학교, Yonsei 연세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강남 8학군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기억을 잘 하진 못하지만 내 큰 어머니도 강남의 8학군으로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어린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 ‘극성엄마’ 였었다. 물론 강남 8학군 효과는 그리 크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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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비밀 고액 과외를 하던 개인교사들이 경찰소로 연행되는 모습
이미지 출처는 경향신문, <http://news.zum.com/articles/25543690>

그 당시의 엄마들은 (아줌마들) 좋은 대학이 편안하고 성공한 인생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좋은 대학’ 은 ‘성공한 인생’ 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전하긴 하다. 물론 일부. 따라서 ‘좋은 스펙’을 따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그게 불법 고액 과외라고 할지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는게 엄마로서의 도리였고 역할이자 꿈 이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갈 때는 불법 과외같은 건 없었지만 (암암리에 있었을지도) 쪽집게 과외라고 불리우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쪽집게처럼 뽑아서 알려준다는 과외, 것을 주위 몇몇 친구들이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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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대학입학 시험장 풍경.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들은 자녀의 시험이 치뤄지는 동안 내내 저렇게 교문앞에 서서 기도를 했다. 힘든것도 추운것도 모른 채, 그렇게 계속 기도를 했다.
이미지 출처는 Samsung & You Premium, <https://www.samsungnyou.com/7486/>

이러한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여전하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치원때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작되고, 그 방식은 예전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스마트’해지고 있다. (스마트 해졌다는 것은 지금의 엄마들은 스마트기기들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습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역시 과도한 교육열을 가진 ‘헬리콥터 맘’ 이나 ‘캥거루 맘’ 들은 자녀들의 삶에 너무 깊게 관여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힌트’를 주는게 아니라, 바로 ‘정답’을 알려주다 보니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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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맘, 이미지 출처는 <http://www.opnews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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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맘, 이미지 출처는 <http://news.donga.com/3/all/20061121/8375428/1>

1980년대 이래로, 한국의 여성들은 “프로 엄마” 그리고 “프로 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이전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엄마, 아줌마들은 ‘수퍼우먼’이다. 모든것을 다 해내는 수퍼우먼.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국의 여성, 특히 아줌마들이 단순히 ‘프로 엄마’ 혹은 ‘프로 주부’의 역할을 하는 수퍼우먼이 아닌, 아줌마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여성은 엄마 혹은 주부 (아내)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스마트해진 치맛바람, 디지털 치맛바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것이다.

(2) 1980년대~1990년대(IMF 이전의 한국여성)

한국여성에 관해 시간순서대로 짧게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두 번째 포스팅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여성 들은 전쟁 직후의 나라와 가족을 위해 어린 여학생들 까지도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고 한국경제를 살려내는데에 주축이 되었었다. 그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중년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현저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에 큰 힘을 보태었다. 특히 제조 부분의 수출이 급성장 하게 되었고 한국의 경제는 안정을 찾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도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결혼 후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되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당시의 기혼 여성들은 결혼 후에 퇴사를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고, 따라서 본인의 의지에 따라 혹은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상당수의 기혼 여성들은 (모두가 아닌) ‘현모양처’를 꿈꾸며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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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기혼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밖에서 일을하며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즉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가족의 모습은  ‘남성’은 가장이 되고 ‘여성’은 현모양처가 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여성은 집안에서 ‘힘든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해야 했고, 남성은 집밖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했다.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침일찍 출근해서 야근은 기본으로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집에오고 또 주말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아버지’들을 통해서 왜 한국남성이 전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집단으로 조사가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집안일과 육아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고, 한국의 가정은 아버지가 빠지고 어머니가 주도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바뀌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자녀들과 어머니는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을 볼 기회가 매우 적었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은 여성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었다. 가정의 일이라는게 단순히 육아와 집안일만 있는것이 아니기에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즉 기혼 여성들은 점점 강해져 갈 수 밖에 없었고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점점 더 의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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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tvn http://program.interest.me/tvn/reply1988)

집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엄마와 아빠’의 두 역할을 해야했고, (물론 아버지 또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시간이 부족했었다. 이는 아버지의 탓이 아니다) 특히 어머니들은 자녀의 교육에 힘을 쏟았다. 소위 ‘극성 엄마’가 된 그 시대의 (여전히 지금도)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자녀교육에 힘을 쏟았는 지는 다양한 시각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 내가 리서치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당시의 어머니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남편의 부재에 따라 (회사일로 인해서 바빴던 그 당시의 아버지들) 가정과 육아는 오롯이 ‘엄마’의 것이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더 강했었던 것 같다. 더불어 그 당시의 어머니들은 결혼과 동시에 ‘현모양처’가 되어야 함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능력개발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가정주부’가 되어야 했으며, 따라서 그들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은 ‘자녀의 교육’이 되었던것 같다. 이러한 엄마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극성엄마를 만들어냈고, 극성엄마는 ‘치맛바람’을 일으키게 되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치맛바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