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모바일 쇼퍼!

아줌마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스마트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화’의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줌마들은 이제 ‘전화’를 뛰어넘어 매우 다양한 용도로 스마트폰을 매우 스마트하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쇼핑!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아줌마들은 TV 홈쇼핑의 열혈 시청자였고 (드라마와 아침마당보다는 덜하겠지만) 그러한 단골들을 위해 TV홈쇼핑은 아줌마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오늘 하루만 이 가격에 그리고 이 ‘덤’을 얹어준다며 아줌마 고객들을 티비앞으로 불러들였고 결국 수화기를 들고 주문하게 만들었었다. 사실 아직도 TV홈쇼핑을 틀면 그러한 여성고객 (특히 아줌마)을 타겟으로한 상품들을 팔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의 시대이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이제 스마트아줌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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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이 지하철에서 ‘smartphoneing 스마트포닝’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중이다, Seoul 2014

 

소파에 앉아서 리모콘과 전화기를 옆에두고 홈쇼핑을 시청하던 아줌마들이 이제는 그녀들의 손안의 피씨,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쇼핑을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보도된 자료들을 통해서 보면, 우리나라의 모바일쇼핑은 역시 여성고객이 주를 이룬다. (남성 고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말길) 특히 젊은 여성들 (20대)과 맘들 (30-40대초반, 아줌마가 되기전의 아줌마 전단계의 맘분들)은 이미 모바일 쇼핑의 주된 고객이다. 화장품, 옷, 책, 공연티켓 그리고 육아용품, 공구, 직구등과 같은 모바일 쇼핑에 능숙한 젊은 여성들과 맘들을 (스마트맘이라고 부른다) 위해 모바일 샵들은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줌마 모바일 쇼퍼족의 수는 아직 모바일 쇼핑이 이러한 젊은 여성과 맘들 보다는 적다. (스마트폰의 사용이 이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된 탓도 있고, 젊은 아줌마층 (40대-50대초반)은 아마도 보통의 아줌마층 (50대 중반-60대 중반)보다는 모바일 쇼핑에 익숙해졌을수도 있다)

스마트 아줌마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계속 늘어갈것이고, 다양한 앱과 특히 모바일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아줌마 모바일 쇼퍼들을 잡기위한 아이템과 마켓팅 전략이 필요할텐데, 과연 지금의 모바일 샵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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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Azmang’ 아즈망, 아줌마 백화점  Mobile Auction.co.kr (http://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B29937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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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Madame Sense’ of Mobile Gmarket.co.kr (http://item2.gmarket.co.kr/item/detailview/Item.aspx?goodscode=341536165&pos_class_cd=111111111&pos_class_kind=T&pos_shop_cd=SH&keyword_order=madame+sense&keyword_seqno=8931769789&search_keyword=madame+sense).

 

아줌마를 위한 모바일 샵은 실제로 꽤 많았다. (생각보다) 우리의 다양한 마트들도 모두 온라인/모바일 샵을 운영중이었고 그 물건의 종류는 어마어마 할 정도로 다양했다. 그리고 아줌마들을 위한 모바일 옷가게도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 두 곳의 사진을 캡쳐해서 올려보았다. (위의 사진 참조)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즈망: 아줌마 백화점’ 이라던지 ‘마담센스’와 같이 가게의 이름에서부터 ‘아줌마’고객들을 위한 가게임을 알 수 있다. 이 둘의 옷들을 구경해보니 아줌마들을 위한 옷들이 정말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좀 내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팔고 있는 물건들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단지 내 의견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아줌마옷 엄마옷 (혹은 더 나이드신 분들을 위한 할머니옷)이라고 부르는건 좋지만 옷들이 대부분 너무 ‘나이들어 보이는’ 옷 들이거나 혹은 젊은여성들이나 맘들 고객을 위한 모바일 옷가게와 비교했을때 옷의 종류가 매우 한정적 이었다. 또한 너무 ‘편한 바지’, ‘편한 고무줄처리’ 등과 같이 ‘아줌마들은 무조건 편한옷만 좋아할꺼야’ 라는 ‘스테레오타이핑’에 의해 선택되어진 옷들이 많은 점도 좀 아쉬웠다. (물론 그동안의 통계에 따라 그러한 옷들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진열되어있음을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다)

사실 엄마를 따라 종종 남대문의 여럿 쇼핑몰 (특히 아줌마들을 위한 옷을파는 쇼핑몰)을 가보면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구경할 수 있다. 종류도 어마어마해서 고르는 재미도 있고, 아줌마들의 각기 다른 취향에 맞는 디자인의 옷들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옷가게, 특히 아줌마들을 위한 모바일샵은 아직 좀 부족한것 같다. 이제 우리는 아줌마 모바일 쇼퍼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스마트 아줌마들이 모바일쇼핑을 지금보다 더 즐길 수 있도록 아줌마들을 겨냥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그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는 물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모바일샵들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아줌마파워는 대단하기 때문이다!

 

정 이란 단어의 의미는 사실 설명하게 애매모호하다. 사랑과 비슷하지만 사랑과는 다르고, 그저 관심 혹은 애정이라고 말하기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한 마디로 정은 그냥 정이다. 한글로도 설명하기 힘든 이 단어의 의미를 영어로 풀어내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 여성에 대한 챕터에 대해서 써내려 가면서 한국의 정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는데, 이 ‘정’이란 놈은 뭐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려워 골치를 썩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 이 포스팅을 쓰면서도, (영문버전)의 경우에 ‘정’에 대해 설명하는게 여전히 힘들고 고달펐다.

이러한 정의 의미에 대해서 학술적으로 풀어놓은 논문도 사실 많지는 않다. 정의 의미는 정이다. 정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한국에 와서 한번 느껴봐라!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가장 마음에 들게 써놓은 훌륭한 논문을 발견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Jeong encompasses the meaning of a wide range of English terms: feeling, empathy, affection, closeness, tenderness, pathos, compassion, sentiment, trust, bonding and love… Koreans considers jeong an essential elements in human life, promoting the depth and richness of personal relations… With jeong, relationships are deeper and longer lasting… Jeong is what makes us say “we” rather than “I”, “ours” than “mine” (U Kim 1994, cited in Kim 1996, p.14)”.

정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정말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 뿐만이 아니라 미운정, 고운정 등과 같이 밉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 경우에 쓰여질 수 있다. 즉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경험해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바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인 것이다. 정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좀 더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이러한 정 때문에 우리는 ‘나’ 보다는 ‘우리’가 될 수 있었고 또한 ‘내것’이 아닌 ‘우리것’을 생각할 수 있던 것이다.

만약 나에게 누가 ‘정이 뭐야?’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좀 생각을 해봐야 대답을 할 수 있을것 같다. 그게 한국어이든 영어이든 상관없이 그냥 정을 풀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이 정 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고 부딪히고 살아가고 있는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수십년동안 매일 함께 하고 있는 정을 이렇게 못 풀어내나?

뭐 정이라는 걸 서양문화에서 찾아본다면 ‘기본적인 매너’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게 또 매너랑은 다른 뭔가가 더 있단 말이다. 한국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특이하고 따뜻한 때로는 귀찮아지기도 해서 오지랖 이라고 부르는 그 정. 정에 대해 설명 못하겠다라는 말을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첫 문장부터 여기까지 계속 하고 있는데도 역시 딱히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해 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정이라는 것은 교과서나 어떤 학문적인 교육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 속에서 매일 부딪히고 경험해 가며 알아가는 그러한 한국의 문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즉, 한국에 와서 한 1년만 지내다 보면 그 ‘정’이라는게 뭔지 무릎을 탁 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학문적으로 설명을 해보고 싶어서 서양문화의 ‘사랑’과 우리의 ‘정’을 비교해 놓은 논문을 찾아 아래에 첨부했다. 사실 이 논문은 1990년대에 쓰여진 것이라 ‘동양’과 ‘서양’이라는 굉장히 이분법적으로 비교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동양’과 ‘서양’이라고 말하기 보다 ‘서양’과 ‘한국’으로 나누고 싶었기에 Asian을 ‘한국’으로 고쳤다. (동양은 매우 넓고 문화와 역사가 서로 판이한 곳이 많으므로 동양을 하나의 문화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양도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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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Kim 1996, p.15)

위에서 보면 정은 사랑보다 ‘관계를 중요시하고’, ‘연결성, 연, 연결고리’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보다 ‘무조건 적인’ 사랑이고 또한 ‘다름을 강조하기 보다는 함께 융합된 (튀는 것보다는 비슷하게 집단속에 함께 녹아져 있는-한국의 집단주의 참고)’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번역이 좀 매끄럽지 못하지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아줌마들 (모든 국민들도 함께)이 금모으기 운동과 같은것에 아무런 댓가없이도 그렇게 결혼반지며 돌반지를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정’ 때문이었다. ‘정’으로 뭉친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고자 그렇게 힘을 쏟아부었던 것이고, ‘정’때문에 모든것이 가능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보다 과거의 우리사회는 훨씬 정이 넘치는 사회였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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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한 다양한 그룹들과 그 그룹속의 그룹에 ‘속함’으로써 한국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정’을 통해 ‘우리’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그룹은 보통 다양한 학연, 지연, 혈연등과 같은 ‘연결고리’를 통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속하게 된다. 같은 소속의 그룹에서 또 다시 ‘정’을 나누고 느끼며 ‘우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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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다양한 그룹들이 존재한다. ‘모임’이라고도 하고. 내가 대학에 다닐때에도 다양한 모임에 속해있었는데, 예를 들어 동네친구들 모임, 영어공부 모임, 동아리 모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성당 모임, 스키동호회 모임 등등… 수많은 모임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들을 알게되고 만나고 친해지는 등의 ‘정’을 나누면서 나와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모임을 좋아한다. 때로는 가고싶지 않은 모임이나 회식을 억지로 가야하는 이러한 한국의 정 문화 혹은 집단주의 문화가 귀찮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게 바로 한국의 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실 외국에 오래 나가 살면서 한국과 외국의 차이점을 여실히 느끼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로 이러한 모임이나 회식과 같은 문화가 정말 달랐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외국에 있다보니, 때론 귀찮고 불편했던 한국의 이런 회식이나 모임이 그리워졌었다.

정, 속함, 우리 이 세가지 요건이 반드시 모임이나 회식과 같은것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짧은 시간에 만나 서로 인사를 할 틈도 없었지만 ‘우리’가 되고 ‘정’을 나누며 같은곳에 ‘속해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바로 떼창과 같은 경우! 나도 좋아하는 밴드가 있어서 공연장에 자주 가는데, 그 때 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따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은 그 공연에 온 또 다른 팬들과 함께 같은 곳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방방 뛰면서 ‘우리’가 되고 ‘정’을 나누는 희열을 느낀다. (아 또 공연 가고 싶어라!)

이렇게 ‘정’을 나누고 ‘우리’가 되는 한국의 사람들. 아줌마들이라는 집단도 그러한 것이다. 중년의 한국여성들, 비슷한 옷차림과 머리를 하고 ‘아줌마’로 불리우는 우리의 어머니들, 그들도 아줌마들끼리의 ‘정’을 나누고 ‘우리’가 되어 우리사회에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아줌마들을 사랑하고 연구하고 있는 중이고!

다음 포스팅부터는 드디어 ‘스마트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국 집단주의 (우리)

I997-1998년에 금융위기를 겪었던 한국은 사실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이  ‘나라를 살리기 위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노력에 의해 IMF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국인 이니까, 한국을 위해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집단주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집단주의, 즉 ‘우리’ 혹은 ‘집단’은 사회적 관계,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을 바탕으로 대부분 이루어졌다. 사실 한국의 집단주의와 같이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블로그는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논문’이 아닌 ‘아줌마와 그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리서치’와 연관된 것들을 쉽게 풀이하여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내용의 것은 이곳에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집단주의에 관한 자세한 점은 따로 구글링을 해서 찾아보시는 것을 권유합니다.

한국의 집단주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의 아줌마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단순히 한국에 사는 중년의 여성 집단 이 아닌, 한국에만 존재하는 매우 한국스러운,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를 나타내주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한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때의 붉은악마는 한국의 집단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집단주의에 대한 이 포스팅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한국의 집단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와 ‘정’에 관한 설명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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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의 아줌마들이 아줌마 집단 끼리의  ‘비슷한 패션’=’아줌마 패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계속 풀어 나가겠다.
이미지 출처 <http://kfoodtalker.tistory.com/3442>

물론, 한국의 집단주의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내 경험으로 봤을때 한국의 집단주의는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획일화를 통해 그 개인이 집단에 잘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속된 말로 튀지 말아라! 가 우리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었고 따라서 초등학교나 대학 그리고 사회에서도 ‘튀는사람’보다는 집단과 잘 어울리는 즉 ‘조금 덜 튀는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다른’사람 보다는 ‘비슷한’사람을 선호하는게 한국사회이고 따라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그 속에 속하는것을 좋아하는게 한국사회 인것 같다. (일반화는 아니고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되어 지는 바를 적은 것이다) 패션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 아이템이 유행하게 되면 백화점이나 다른 상점에 가면 그 인기있는 아이템은 늘 품절이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옷을 입고 있다. 예를 들어 몇년전에 사회적 문제도 되었었던 고가의 노스페이스의 패딩을 입은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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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사진은 권력이다’ 블로그  <http://photohistory.tistory.com/11401>

그리고 사회적 문제는 아니고 아줌마들의 패션을 나타내주는 ‘등산복패션’!! 어딜 가나 등산복 입은 아줌마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또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등산복은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라서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같은 패션을 하고 있는 아줌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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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집단주의는 ‘나’보다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이러한 한국 집단주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집단주의가 가진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한국의 집단주의의 긍정적인 면, 예를 들어 한국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붉은 악마, 떼창문화 그리고 아줌마 문화)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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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Koreatimes.co.kr <http://www.koreatimes.co.kr/www/news/biz/2014/01/291_67541.html>

떼창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우리’라는 컨셉을 통해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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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We’는 물론 ‘I’의 복수형태이다. 따라서 ‘I’가 여러개 모이면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우리의 ‘우리’라는 개념은 단순히 ‘나’의 복수형태가 아닌 ‘나’와 ‘정’의 결합으로 생긴것이 우리의 개념이다. 즉 정이 없으면 우리가 될 수 없는 한국특유의 개념인 것이다. (사실 ‘우리’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 할때 굉장히 어려웠었다. 서양인들에겐 생소한 ‘정’이라는 개념과 ‘we’와 ‘우리’가 같은 개념이 아님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었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는 매우 독특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Korean collectivism (we-ness)

The gold collection  campaign were possible because of Korean collectivism which is We-ness, Uri (or Woori). Uri,  we-ness, or in group-ness as a more essentially relevant feature of Korean collectivism. The social relationship among Korean in-groups are based on social networks, the sophisticated genealogical system, the power of school connections, or regionalism. For Koreans, group is very important. To explain or talk about Korean collectivism in one blog post is not enough but this blog is not a ‘thesis’ rather a blog that I would like to share my research project, especially about ‘ajummas and their usage of smartphones in everyday practices’. In addition, I need to mention about Korean collectivism to support some ideas (e.g. gold collection campaign). Moreover, it might be helpful to you to understand Korea and ‘ajummas’ in Korean society if you know what Korean collectivism (we-ness) and Jeong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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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mage explains how ajummas have similar hair styles in Korea. More stories about ajummas will be posting continuously.

image from <http://kfoodtalker.tistory.com/3442>

 

Of course, there are negative opinions how Korean collectivism ignores everyone’s individuality and force to be standardised. For me, Korean collectivism can be pros and cons in many ways. It leads people to be united and do something together such as Red Devils (supporting group for the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Group Singing or Gold collection campaign. This Korean collectivism brought people to feel like ‘We are Koreans’ or ‘We are  one’. And in my experience, this Korean collectivism doesn’t allow me to be different from others. In other words, being different from others is not an ideal thing to be in certain groups. Thus I have to become similar with others in groups to stay in certain groups. This is just my opinions so there should be various ideas about Korean colle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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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Koreatimes.co.kr <http://www.koreatimes.co.kr/www/news/biz/2014/01/291_67541.html>

 


Group Si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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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chool students wear the same North Face jumpers at graduation ceremony

image from: photohistory.tistory.com  <http://photohistory.tistory.com/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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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s wear similar mountain-climbing clothes in the subway

 

This Korean collectivism can be explained with the concept of ‘Woori (we-ness)’.

Woori (w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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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is a plural of ‘I’ in linguistic. So a group of ‘I’ can be interpreted as ‘Woori’ (because Woori means ‘we-ness’ in English).

However, Woori is not simply a plural of ‘I’. As you can see above, woori is not a simply a plural of ‘I’, and it needs ‘jeong’ between ‘I’ to become woori.

Then, what is Jeong?

 

금 모으기 운동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로 인한 나라의 경제적 손실은 그 당시의 수많은 가정과 개인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이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업채의 부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잃은 사람들, 학비가 없어서 학업을 그만둬야 했던 학생들 그리고 나라의 경제위기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 된 것이 바로 ‘금 모으기 운동’ 이었고, 전국 각지에서 금을 가지고 남녀노소 구분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단 이틀만에 10여톤의 금이 모이게 되었다!

비디오 출처는 KBS News 1998년 1월 6일  <https://www.youtube.com/watch?v=P5puNUKcL3s>

장롱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소중한 금을,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나라를 살린다는 일념하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여들었다. 우리의 아줌마들 (어머니들)도 이 금 모으기 운동에 물론 동참하셨다. 자식의 소중한 돌바지 부터 그들의 결혼반지 까지,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은 모조리 들고 나와 줄을 서서 금을 기부했다. 이 금 모으기 운동은 얼마전 그리스의 사태에서도 언급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국민모두가 금을 모아 나라의 경제위기를 구한 적은 대한민국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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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국인의 금 모으기 운동은 한국인의 ‘집단주의’로 설명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집단주의’는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붉은 악마’, ‘촛불 시위’등의 좋은 예들이 이러한 한국인의 집단주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 집단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Gold Collection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brought serious economic pain to every Korean family but people in Korea became one to overcome this economic crisis together at the same time.

Ten tons of gold was collected by people only in 2 days

video from KBS News in 6th January 1998 <https://www.youtube.com/watch?v=P5puNUKcL3s>

Gold collection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examples of campaigns during the IMF, from 1997 to 1998. The gold collection campaign was diffused to the whole nation regardless of age and gender. In particular, many housewives gave up their wedding rings and their children’s first-birthday rings to support the nation’s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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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Korea brought and donated their gold to the government with no string attached during 1997 to 1998. The only reason to donate their gold was for saving their country and “becoming a powerful nation”. This movement can be explained with Korean collectivism.

Have a good weekend all ajummas! 모든 아줌마분들! 좋은 주말 보내세요!

Have a good weekend all ajummas!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아줌마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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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Locksmith’ in Seoul

‘아줌마 열쇠’ 서울의 한 열쇠가게 이름

한국의 여성 (3) IMF 1997년

1997년, 대한민국은 금융위기를 맞았다.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로 인해 대한민국의 경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졌고, 이러한 경제위기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가부장적인 핵가족 중심의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김 2008, p. 392).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서 당시의 여성들은 더이상 현모양처로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즉, 자녀양육과 가정을 돌보던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 가족을 위해 집밖에서도 일을 해야하는 ‘가장’의 역할까지 동시에 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우리 아줌마들 (엄마들, 어머니들)은 집안과 집밖을 동시에 돌봐야하는 정말 힘든 시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했던 일은 비정규직의 저임금 파트타임 일들 이었고, 이는 대부분 마트에서 짐을 옮기거나, 물건을 파는 일 혹은 계산원 같은 고된 일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가족과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해 그러한 힘든 일들을 마다않고 묵묵히 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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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영화 ‘카트 (2014)’,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03011094055036>

우리의 아줌마들은 그렇게 일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의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따라서 집안에서 가정으로 돌보고 집밖에서는 워킹맘으로 일을 하며 다함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1997년과 1998년 동안의 경제위기 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고달프고 힘들었다.

1998년 5월, 80%가 넘는 가정의 임금이 삭감되었고, 또한 대부분의 가정의 가장은 실직을 하게 되었다.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던 가장의 실직은 가족을 힘들게 하였고 또한 가장 자신도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낼수 없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했던, 대한민국 모두가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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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월간 조선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101100071>

1998년, 자살율이 전년도에 비해서 42%나 높아졌고, 남성의 자살율이 여성보다 현저히 높았던 것으로 조사 되었다. 이를 통해서 추측하건데, 아마도 그 당시의 우리 아버지들이 임금삭감과 실직으로 인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것에 대해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통계 자료에는 정확한 사유가 나와있지 않았다)

이렇게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던 IMF시기에, 각종 미디어는 다양한 캠페인과 공익 광고를 내놓아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힘을 썼다. 특히, 아버지들을 위한 캠페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들에 대한 차별이라기 보다 그 당시 대부분의 ‘가장’이었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실직등으로 인해 아버지를 위한 캠페인이 좀 더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캠페인이 행해졌는데 그 한 예로 ‘금 모으기 운동’을 반드시 얘기해야 할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한 글은 다음 포스팅에서!

1997년 기아자동차 TV광고  “우린 할 수 있어요!”

참고문헌: (1) Kim, S 2008, ‘Feminist Discourse and the Hegemonic Role of Mass Media’, Feminist Media Studies, vol. 8, no. 4, pp. 391-406.

한국의 여성 (2)-1 1980년대 치맛바람

치맛바람! 요즘에는 많이 쓰진 않지만 1980년대에는 많이 쓰였던 말이다.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와 사설 학원등을 다니며 관여하는 것을 빗대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다닌다’ 라고 그 당시 극성 엄마들의 행태를 비꼬아서 부르던 말이다. 지금도 한국엄마들의 교육열은 대단하지만 1960년대 이후 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엄청났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과외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사교육은 단순히 ‘교육열’을 넘어선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강남 8학군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 변경, 이사 등은 말 할 것도 없었고, 이로 인해 강남 8학군의 학교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지금이야 없어진 모습이지만 그 당시의 엄마들은 소위 말하는 ‘SKY (Seoul대학교, Korea 고려 대학교, Yonsei 연세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강남 8학군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기억을 잘 하진 못하지만 내 큰 어머니도 강남의 8학군으로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어린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 ‘극성엄마’ 였었다. 물론 강남 8학군 효과는 그리 크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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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비밀 고액 과외를 하던 개인교사들이 경찰소로 연행되는 모습
이미지 출처는 경향신문, <http://news.zum.com/articles/25543690>

그 당시의 엄마들은 (아줌마들) 좋은 대학이 편안하고 성공한 인생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좋은 대학’ 은 ‘성공한 인생’ 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전하긴 하다. 물론 일부. 따라서 ‘좋은 스펙’을 따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그게 불법 고액 과외라고 할지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는게 엄마로서의 도리였고 역할이자 꿈 이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갈 때는 불법 과외같은 건 없었지만 (암암리에 있었을지도) 쪽집게 과외라고 불리우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쪽집게처럼 뽑아서 알려준다는 과외, 것을 주위 몇몇 친구들이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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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대학입학 시험장 풍경.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들은 자녀의 시험이 치뤄지는 동안 내내 저렇게 교문앞에 서서 기도를 했다. 힘든것도 추운것도 모른 채, 그렇게 계속 기도를 했다.
이미지 출처는 Samsung & You Premium, <https://www.samsungnyou.com/7486/>

이러한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여전하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치원때부터 엄마들의 교육열은 시작되고, 그 방식은 예전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스마트’해지고 있다. (스마트 해졌다는 것은 지금의 엄마들은 스마트기기들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습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역시 과도한 교육열을 가진 ‘헬리콥터 맘’ 이나 ‘캥거루 맘’ 들은 자녀들의 삶에 너무 깊게 관여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는 ‘힌트’를 주는게 아니라, 바로 ‘정답’을 알려주다 보니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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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맘, 이미지 출처는 <http://www.opnews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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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맘, 이미지 출처는 <http://news.donga.com/3/all/20061121/8375428/1>

1980년대 이래로, 한국의 여성들은 “프로 엄마” 그리고 “프로 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이전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엄마, 아줌마들은 ‘수퍼우먼’이다. 모든것을 다 해내는 수퍼우먼.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국의 여성, 특히 아줌마들이 단순히 ‘프로 엄마’ 혹은 ‘프로 주부’의 역할을 하는 수퍼우먼이 아닌, 아줌마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여성은 엄마 혹은 주부 (아내)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스마트해진 치맛바람, 디지털 치맛바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것이다.

한국의 여성 (1)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역사는 이 블로그에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한국의 여성학은 유럽과 같은 서양보다는 늦게 시작되었지만,  “한국의 여성학은 서양에서 수입해온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쌓아올린 매우 주체적 학문” 이다 (장필화 2014). 한국 여성의 역사에 대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다 풀어내지는 못하겠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한국 여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역사적 사건들과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늘 큰 힘이 되어준 한국경제 성장의 주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주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또한,이 블로그는 논문이 아니기에, 논문에서 다뤘던 내용보다는 좀 더 가벼운 내용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 여성에 대해서 시간순서대로 나열해 보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첫 번째로 ‘197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여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1)197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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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의 한국 여성들은 나라의 경제성장에 일조를 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부터 1970년대 까지 수많은 어린 여학생들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 결과 한국은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산품은 (농산물도 예외는 아니지만) made in China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made in Korea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큰 어머니의 가족분들이 미국에 사셨는데 그 때 대부분의 물건들이 made in Korea였다고 지금도 말씀하시곤 한다. 수출을 하던 물품들은 주로 봉제인형, 가발, 양말, 스웨터 등의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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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수출품 1960년대~1970년대 (서울역사 박물관에서 촬영한 것)

어린 여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대신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여학생들은 공장에서 그렇게 먹고 자며 일을 했다. 이 어렸던 여학생들이 지금은 아줌마가 되어, 우리 엄마의 나이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 분들의 고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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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2번째 이야기,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전의 한국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Kim Yeo-sa (Mrs. Kim)

Have you heard about Kim Yeo-sa? In the previous post I mentioned about biased views about ajummas (e.g. The Third Gender) I mentioned how ajummas are treated generally in Korea. Kim Yeo-sa is another representative example to show how people have prejudice against ajummas especially for ajumma dr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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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Aware an Ajumma!!)

(image from http://gift.kyobobook.co.kr/ht/product/detail?barcode=2310003451616)

 

Kim Yeo-sa illustrates how ajumma drivers are satirically applied to Korean society. The most ajumma drivers were known and called collectively as Kim Yeo-sa. Kim is the most common surname in Korea and Yeo-sa means Madame in English so Kim Yeo-sa means Mrs. Kim. Various new media reports that Mrs. Kim caused car accidents due to her unskilled driving. However, one thing needs to be considered that there is dispute about the word Mrs. Kim. It is a (sexual) prejudice against female drivers as unskilled and inexperienced compared with male drivers. For example, there is not such a word, Mr. Kim for unskilled and inexperienced male drivers. Moreover, Mrs. Kim is only for middle-aged and married women, ajummas. (The word Mrs. Kim is not used for single and younger female drivers) And even other non ajumma female drivers call ajumma drivers as Mrs. Kim.

HJ Kim:

I’ve been driving for more than 15 years but I still feel scared and expect insults when I drive. I think they (men and non-ajummas) look down ajummas only because we are ajummas. 

RK Hwang:

They just ignored us because we are ajummas. And people don’t care whether we are well experienced drivers or not.

(Focus group Interview from my research)

Ajumma drivers were treated just as Mrs. Kim who are unskilled drivers whether these ajumma drivers are really good at driving or not. People just don’t care about their skills, rather they put ajumma drivers together and dismiss them as Mrs. Kim.

There is an episode about Mrs. Kim when non-ajumma drivers met unskilled Mrs. Kim on the road. They (non-ajumma drivers, mostly male drivers) yelled to Mrs. Kim “Go home and cook dinner instead!!!”

How rude they are!

However, you know ajummas, they are strong and superwomen. They seem undaunted by these biased views about Kim Yeo-sa. Their responses for this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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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accepted themselves as Mrs. Kim and they are now trying to improve their driving skills (if they’re unskilled or inexperienced drivers).

Of course some of Mrs. Kim and also Mr. Kim are nuisances on the road. However, we have to remember that all of ajumma drivers should not be considered as Mrs. Kim. Many of ajummas drivers are very good at driving and many of non ajumma drivers are not good at driving as well. Thus, we should have fair-minded about ajumma drivers.

 

The return of an aju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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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hoto is a campaign poster for the National Assembly that I’ve taken on Sunday. It says, “The return of an Ajumma”

I reckon ajummas are normally recognised as superwomen who care their family, friends and neighbors. And they know how to enjoy their lives in their own ways as well.

I’m not interested in this party and the election rather I’m posting this photo only because she uses the ‘ajumma’ and their identity for the campaign. That’s it. And this poster tells how ajummas are recognised among people in Korea in a positive way.

“The return of an ajumma”

Well, they didn’t return to us. They are always with us.